영국에서는 왜 크리스마스에 축구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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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풍복한 순간이다. 텔레비전, 음식, 가족과 보내는 시간, 그리고 영국에서는 축구까지 더해진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성탄절 기간에도 예외 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박싱데이와 새해 첫날을 포함해 일주일에 두 경기를 치르는 것이 관례다. BBC는 25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왜 크리스마스에도 경기를 할까’라는 제목으로 사연을 소개했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최소 2주간 겨울 휴식기를 갖는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축구가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전통은 방송사나 현대 상업 축구의 산물이 아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축구 문화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BBC가 축구사 전문가들을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축구는 중세 공공 경기와 노동자의 휴일 문화에서 비롯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1863년에야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공을 중심으로 한 집단 경기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중세 축구’ 또는 ‘몹 풋볼(mob football)’로 불린 이 경기는 1170년 기록까지 확인된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은 주요 경기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전통은 명맥을 잇고 있다. 스코틀랜드 오크니 제도의 ‘오크니 바 게임’은 크리스마스 당일 열리고, 잉글랜드 더비셔 애시번에서는 ‘로열 슈로브타이드 게임’이 치러진다. 축구는 오랜 세월 공공 축제의 일부였다.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서며 크리스마스 축구는 더욱 제도화됐다. 역사학자 마틴 존스 교수는 “축구가 크리스마스에 열렸던 이유는 그날이 휴일이었고, 노동계층을 위한 공공 행사가 전통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싱데이에도 경기가 열리면서 이틀 연속 경기를 치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싱데이는 매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해당하는 영국 공휴일로, 과거에는 고용주가 하인이나 노동자에게 선물 상자를 나눠주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대규모 쇼핑 세일과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축구 경기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날로 자리잡았다. 박싱데이는 1871년 제정된 은행휴일법에 의해 공식 공휴일로 지정했다. 축구 클럽들은 공휴일이 대규모 관중을 불러모을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부활절에도 강행군이 이어졌다. 일부 구단은 나흘 동안 세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1913년 리버풀은 크리스마스 당일 맨체스터 시티를 4-2로 꺾은 뒤, 박싱데이 원정에서 0-1로 패했고, 이튿날 블랙번과 3-3으로 비겼다. 현대 축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정이다. 오늘날 리버풀 일정이 그 정도로 빡빡하지는 않지만, 박싱데이 축구만큼은 여전히 확고하다. 당시 크리스마스는 지금처럼 가정 중심의 명절이 아니었다. 빅토리아·에드워드 시대 노동계층 주거 환경은 열악했고, 집은 휴식보다는 탈출 공간에 가까웠다. 존스 교수는 “드문 휴일을 맞은 노동자들은 집에 머무르기보다 거리와 경기장으로 나서는 것을 선호했다”고 설명했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최소 2주간 겨울 휴식기를 갖는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축구가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전통은 방송사나 현대 상업 축구의 산물이 아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축구 문화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BBC가 축구사 전문가들을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축구는 중세 공공 경기와 노동자의 휴일 문화에서 비롯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1863년에야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공을 중심으로 한 집단 경기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중세 축구’ 또는 ‘몹 풋볼(mob football)’로 불린 이 경기는 1170년 기록까지 확인된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은 주요 경기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전통은 명맥을 잇고 있다. 스코틀랜드 오크니 제도의 ‘오크니 바 게임’은 크리스마스 당일 열리고, 잉글랜드 더비셔 애시번에서는 ‘로열 슈로브타이드 게임’이 치러진다. 축구는 오랜 세월 공공 축제의 일부였다.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서며 크리스마스 축구는 더욱 제도화됐다. 역사학자 마틴 존스 교수는 “축구가 크리스마스에 열렸던 이유는 그날이 휴일이었고, 노동계층을 위한 공공 행사가 전통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싱데이에도 경기가 열리면서 이틀 연속 경기를 치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싱데이는 매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해당하는 영국 공휴일로, 과거에는 고용주가 하인이나 노동자에게 선물 상자를 나눠주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대규모 쇼핑 세일과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축구 경기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날로 자리잡았다. 박싱데이는 1871년 제정된 은행휴일법에 의해 공식 공휴일로 지정했다. 축구 클럽들은 공휴일이 대규모 관중을 불러모을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부활절에도 강행군이 이어졌다. 일부 구단은 나흘 동안 세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1913년 리버풀은 크리스마스 당일 맨체스터 시티를 4-2로 꺾은 뒤, 박싱데이 원정에서 0-1로 패했고, 이튿날 블랙번과 3-3으로 비겼다. 현대 축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정이다. 오늘날 리버풀 일정이 그 정도로 빡빡하지는 않지만, 박싱데이 축구만큼은 여전히 확고하다. 당시 크리스마스는 지금처럼 가정 중심의 명절이 아니었다. 빅토리아·에드워드 시대 노동계층 주거 환경은 열악했고, 집은 휴식보다는 탈출 공간에 가까웠다. 존스 교수는 “드문 휴일을 맞은 노동자들은 집에 머무르기보다 거리와 경기장으로 나서는 것을 선호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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